점심 먹고 혼자 걷다가 든 생각
그날도 별 거 없는 평범한 수요일이었어요. 점심 먹고 회사 근처 공원을 혼자 걷고 있었는데, 바람이 좀 쌀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날씨 때문이었을까요. 이상하게 마음이 싸해졌어요.
제가 지금 49세거든요. 딱 반백 살이죠.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예전엔 60까지는 거뜬하겠지 싶었는데… 요즘은 회사 돌아가는 거 보면, 55세 넘긴 분들 자리 하나둘 사라지고, 구조조정 얘기 나오고… 딱히 내 얘기가 아닌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은근 무섭기도 했고요.
내 계좌에 뭐가 들어있나 들여다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통장 내역부터 열어봤어요.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도 찾아봤고요.
근데 그 숫자가 정말… 너무 적은 거예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어요.
“이걸로 내가 노후를 산다고?”
진짜 웃긴 건, 제가 평소에 생활 정보 블로그도 운영하고, 정부 지원금이나 금융 팁도 소개하면서도 정작 제 노후 준비는 이렇게 허술하게 해놨다는 거예요.
뭐랄까,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마음이 따라가질 않았던 거죠.
나 혼자 정리해본 ‘노후 준비 어디까지 왔나’ 점검표
항목 | 준비 여부 | 비고 또는 느낀 점 |
---|---|---|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 | 확인 완료 | 금액 적어서 놀람… 따로 준비 필요하다고 느낌 |
직장 퇴직연금 현황 | 일부 파악 | 어디에 운용되는지도 몰랐던 게 반성됨 |
연금저축 계좌 개설 | 완료 | 설정 실수 한 번 있었지만 다시 바로잡음 |
IRP 계좌 개설 및 입금 | 완료 | 수수료 문제 겪고 나서 신중해짐 |
의료비 비상금 마련 | 준비 중 | 매달 조금씩 모으는 중, 아직 부족함 |
월간 생활비 예상 시뮬레이션 | 작성 완료 | 만들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이 좀 줄어듦 |
배우자와 공동 계좌 운영 | 시작함 | 처음 해보는 거라 은근 뿌듯했음 |
그동안 왜 미뤘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날 밤 아내랑 둘이 앉아서 얘기를 했어요. “우리, 노후 준비 진짜 이제 해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아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솔직히 나도 불안했어. 근데 당신이 별 말 없으니까 그냥… 나도 미뤘지.”
그 말 듣는데 괜히 미안하고 마음이 찌릿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했어요. 아직 애들도 한창이고, 집 대출도 남았고, 생활비 빠듯하고… 그러다 보니 노후 준비는 늘 ‘나중에’였던 거예요.
근데 말이죠. 그 나중이라는 게, 생각보다 금방 오더라고요.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의 그 혼란
다음날부터는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50대 노후 준비 방법’, ‘연금저축이란’, ‘IRP 세액공제’ 이런 키워드들로요.
근데 정보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유튜브에서도 이 사람 말 다르고, 저 사람 말 다르고… 뭐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루는 은행에 직접 가봤어요. 창구에서 “연금저축 가입하고 싶은데요…”라고 말은 했는데, 직원분이 펀드 얘기부터 수익률, 리밸런싱, 연금개시 나이까지 쭉 설명해주시는데…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말만 예 라고 하고는 그냥 빈 손으로 나왔어요. 아, 진짜 부끄럽더라고요.
실수담 하나, IRP 개설하다 생긴 웃픈 에피소드
그날 저녁엔 증권사 앱을 깔아서 IRP 만들려 했어요. 주변에서 IRP 세액공제 좋다고 하도 얘기하길래.
근데 가입 중간에 ‘본인 인증’ 단계에서 막힌 거예요. 공인인증서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휴대폰 인증은 에러 나고… 결국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요.
“고객님, 공동인증서가 만료되셨네요. 재발급 후 다시 시도해주세요.”
하아… 그날 밤 두 시간 넘게 인증서 재발급만 하다 잠들었어요.
다음날 아침 다시 도전해서 겨우 가입 완료했는데, 설정한 상품이 알고 보니 수수료 높은 채권형이더라고요. 아는 후배가 뒤늦게 보고 “형, 이거 다시 설정하세요”라고 말해줘서 겨우 바꿨죠.
이제 웃으며 말하지만, 그땐 정말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터닝포인트는 ‘내 삶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날
그렇게 한두 번 깨지고 나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떤 노후를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돈만 모으려 했구나.’
그날부터는 돈 이야기보다 내 인생 계획부터 정리해보기로 했어요.
노트 한 권을 꺼내서, 거기다 제가 60대가 되었을 때의 일상 모습을 그려봤어요.
아침에 몇 시쯤 일어나고, 어떤 동네에서 어떤 집에 살고, 무슨 일을 하고 싶고, 건강은 어떤 상태일지… 그러다 보면 필요한 비용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엑셀로 ‘노후 월간 필요금액표’라는 걸 만들었어요. 생활비, 의료비, 문화비, 경조사비… 전부 다 항목별로 적어봤죠.
솔직히 처음엔 좀 우울했어요. 내가 은퇴하면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동시에 뭔가 확실해졌어요. 아, 이걸 기준으로 준비하면 되겠구나.
지금은 이렇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연금저축계좌에 매달 40만 원씩 자동이체해요. IRP는 연말정산에 맞춰 300만 원 한도로 맞춰서 넣고 있고요.
수익률도 매달 체크하고, 분산투자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부부 공동 계좌도 만들었어요. ‘노후생활비 준비용’으로. 거기엔 매달 생활비 아끼고 남은 돈을 넣어요. 적금이 아니라 CMA로 설정해서 조금은 유연하게 운용 중이고요.
이젠 예전처럼 ‘연금=국민연금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금저축, IRP, 퇴직연금, 그 외에 부수입까지… 조합을 만들어가는 게 진짜더라고요.
아내랑 둘이 앉아 만든 ‘우리 부부 노후 생활 가상 시나리오’
항목 | 목표 설정 금액 | 현재 준비 금액 | 준비율 | 한 줄 정리 |
---|---|---|---|---|
기본 생활비 | 월 200만 원 | 월 120만 원 | 60% | 생각보다 생활비가 많이 들 것 같음 |
의료/건강 관리비 | 월 50만 원 | 월 10만 원 | 20% | 이건 진짜 더 신경 써야겠다고 느낌 |
문화/여가비 | 월 30만 원 | 월 5만 원 | 16% | 여행은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될 수도… |
자녀 지원비 | 없음 | 없음 | 0% | 자녀 성인 후에는 각자 자립 기준으로 설정 |
비상 상황 대비비 | 1,000만 원 | 320만 원 | 32% | 조금씩 CMA로 채워가는 중, 마음의 위안 됨 |
마무리하며 마음에 남는 말
며칠 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읽은 문장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미래는 준비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지금 시작한 사람의 것이다.”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한 발자국’이라는 걸 저도 이제야 알겠어요.
아직도 가끔은 불안해요. 금리가 오르면 어떡하나, 갑작스러운 병원비는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안 드는 건 아니에요.
근데 예전과 다른 건, 이제는 그런 걱정들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내랑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거예요.
혼자 고민하지 않고, 서로 얘기 나누면서 같이 준비한다는 게 진짜 큰 힘이 되더라고요.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 불안하신가요? 머릿속이 복잡하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요.
그럴 땐 그냥 노트 한 권 꺼내세요. 거기다 지금 생각나는 거, 막연한 걱정, 희망, 계획… 뭐든 써보세요.
시작은 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